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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천년영웅 칭기즈칸 시리즈

추천사 - 이어령

소설의 재미 이상의 것 
 
이어령
(이화여대 석학교수)
   
“몽골군이 지나간 뒤에는 먼지만이 남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맹목적인 파괴자요, 잔인한 학살자의 야만 집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을 정복하여 한 세기 이상을 통치한 몽골 군단은 우리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글로벌리즘과 세계 시스템의 원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칭기즈칸이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하고 그 위에 유목민의 대제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쟘치(驛傳)라고 불리는 정보 네트워크를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 군단은 중요 도로 45킬로미터마다 역참(驛站)을 두고 말(馬)로 연결하여 오늘날의 인터넷 같은 정보 통신망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 역참에는 4백 두의 말들이 있었고 문서를 속달하기 위해서 10리마다 릴레이식으로 연결하는 마을을 두어 초고속 정보망을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칭기즈칸은 군인과 군사 요충지는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지만 비전투적인 민간인들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하샬이라는 정책을 써서 민간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주어 후반 기지를 만들고 기술자들을 영입하여 우대했다. 그러니까 칭기즈칸의 쟘치가 통신 네트워크를 만들어 세계 시스템을 가능케 한 정보 문명의 효시였다면 하샬 정책은 국경의 벽을 부수는 글로벌리즘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양의 아시아 정복과 그 지배는 문명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근대화라고 부르고 몽골 군단이 서양을 정복하고 지배한 것은 야만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황화(黃禍)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구 편중의 시각에서 칭기즈칸을 왜곡하고 몽골 군단의 힘을 과소 평가하려고 한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몽골의 지배를 메뚜기떼의 습격이나 페스트와 같은 재앙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심지어 서양 학자들 사이에는 몽골의 동유럽 정복을 기후 변화에 의해 기근이 들어 굶주린 유목민들이 식량을 구해 쳐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서양 사람들의 이 황화 콤플렉스는 현대라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가 성장하면 서양을 위협하는 황화론이 대두되고 거꾸로 오늘날처럼 금융 위기가 닥쳐 경제가 어려워지면 이른바 아시안 밸류의 한계론을 들고 나온다. 잘될 때나 잘못될 때나 아시아인을 보는 서구의 시각에는 늘 몽골 콤플렉스의 필터가 있다.
지금 아시아에 대한 세계의 시각은 곱지가 않다. 얼마 전만 해도 재팬 배싱(때리기)이 재팬 패싱(별 볼일 없으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 되더니 이제는 재팬 낫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일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한국 그리고 비서구 국가에 모두가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럴 때 칭기즈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재미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서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칭기즈칸의 모습을 다시 찾고 그 뒤에 숨었던 정보화·국제화의 아시아의 힘을 객관적으로 재인식하게 된다면 오늘의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시아를 알아야 서양을 안다. 이 방대한 소설 <천년영웅 칭기즈칸>이 왜 시저나 나폴레옹의 영웅담을 읽는 것과는 다른 충격을 주는가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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