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장례식장에서

2008/03/18 (화) 18:39

 

올해 아흔네 살이신 당숙모가 돌아가셨다.

내가 중학교 입학하고 보름간 당숙모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다닌 적이 있어 늘 가까이 찾아뵙던 분이다.
이삼 년 전부터 날 알아보지 못하셨다. 당숙모를 뵐 때마다 중학교 1학년 3월이 생각나곤 해서 난 늘 기분이 좋았다.
아마 내가 숫기가 있거나 쥐꼬리만한 용기라도 있었더라면 당숙모하고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나는 처음 집을 떠난 터라 가족이 너무 그리워 보름만에 책가방 싸들고 집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대가로 30리 길을 걸어다녀야 했고, 기어이 신경쇠약증에 걸려 귀신도 보고 오줌도 싸는 고초를 겪었다.

 

병원에 가니 다 정든 얼굴들이다.
당숙모 영정 앞에 대형 성경이 놓여 있었다. 절을 두 번 올렸다. 가족이니 상주한테는 따로 절을 하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성경 보시라고 몇 페이지 넘겨 드렸다. 마음 속으로 돌아가신 장모님이 좋아하시던 귀절을 읽어드렸다.

 

-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을 비추는 등불이요, 내 길을 비치는 빛이시라

 

전에 대학다니고 젊을 때는 친척들 상이 나도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무덤덤하게 다녀오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상 치르는 사람들이 다 내 연배이다 보니 죄다 얼굴이 익다. 할 얘기도 많아진다. 친척간에 상이라도 나야 무슨 동창회 하듯이 다 모이고, 그간 못다 한 얘기보따리가 풀린다. 명절 때 못보던 얼굴까지 다 볼 수 있는 게 장례식장이다. 

 

오늘 주제는 다른 데 있다.
형들하고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등산 얘기가 나왔다.
당숙모 연세가 아흔넷인데 뭐 호상 아니냐, 이러면서 일부러 떠들어댔다.
그런데 한 형이 등산은 딱 세 시간이면 족하지 뭐하러 힘들게 일곱 시간, 여덟 시간 죽을힘을 다해 기어오르냐고 핏대를 올렸다.
다들 꾀부리는 형을 비난했다. 세 시간 탈 거면 등산이라고 하지 말고 산책이라고 해라, 이래라 저래라 말들이 많았다.
나도 용기있게 나서서 나라도 세 시간이면 좋을 것같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나한테 화살이 마구 꽂혔다.
그런 중에 가만히 따져 보니 그 형 나이가 올해 회갑이었다. 61세 회갑 말이다.

"아니, 형. 올해 회갑 아니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런, 다들 같이 늙어가다 보니 형이 회갑인 줄도 모르고 등산은 산 정상까지 밟는 게 정석이다, 어떻다 열을 올린 것이다. 회갑인 형이 등산을 세 시간이나 하면 됐지 뭘 더 부족하여 소리를 질러댔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 자리 모인 형들 나이가 쉰아홉, 쉰여덟, 쉰일곱, 쉰여섯 등이다. 쉰하나인 내가 가장 어리다.

 

그나저나 예순한 살이 되어도 일곱 시간, 여덟 시간 죽어라 산을 타야 하는 건가?

그날 다수결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일족의 건강이 이렇게 좋은 건지, 내가 시원찮은 건지 모르겠다.

당숙모 가시는 길에 조카들이라도 실컷 떠들어주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성경이나 찬송가보단 우리가 떠드는 소리가 더 듣기 좋으셨을 것이다.

'파란태양 > *파란태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처님, 오지 마세요   (0) 2009.01.08
아버님전상서의 계절   (0) 2009.01.08
작가는 종교를 가질 수 없다   (0) 2009.01.08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 때   (0) 2009.01.08
결국 사람이다 2   (0) 2009.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