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요즘 한겨레신문에 우리말 관련 연재글을 싣고 있는데, 조선일보에 블로그를 둔 한 대학교수(국문학 전공)가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저 아래에도 실려 있는 "6. 신라, 우리말을 한자로 덮어쓰다 ②"을 읽고 그렇게 험한 말을 한 것이다.
누구길래 그럴까 하고 신분을 먼저 살폈다. 애들이 그러는 거야, 또는 아마추어가 그러는 거야 그러려니 하고 말면 되는데, 무슨 대학 국문학 교수란다.
그의 블로그 소개글을 먼저 보자.
- @@大 敎養科(國語國文學) 敎授 @@@입니다. 韓國語 標準發音 定立을 위하여 放送言語를 硏究하고 있으며, '韓國語 바르고 아름답게 @@@' @@@을 맡고 있습니다. 다음에서 '@@@의 放送言語 바로잡기' 카페를 運營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웨블로그에도 오늘날 混亂한 放送言語를 바로잡는 글을 싣고자 합니다.
* 대학명과 그의 이름은 명예를 위해 @@@ 처리.
이러면 내 태도는 달라진다. 프로끼리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예의가 있는 법인데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찬찬히 그의 논리를 살펴 그가 재직한다는 대학교에 항의 팩스를 보냈다. 연락처가 그가 내세운 대학밖에 없으니 그 대학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의 비판 글을 읽어보자. 저 아래 원문부터 읽으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에 밑줄을 친다. 한자어는 그가 쓴 것이니 원문 그대로 즐겨보시길.
제목부터 겁난다만 강호는 원래 이런 법이니 감수해야지.
- (必讀) 한겨레신문의 이재운이라는 한글專用派의 어리석음
국민을 曲學阿世하는 저런 危險한 인간이 있군요. 저런 論理는 너무 單純無識하여 제가 反論을 쓸 價値도 없으나, 혹시 저런 幼稚한 글에 속아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봐서 反論을 적겠습니다.
訓民正音 創製 以前에는 韓國語는 漢字로 記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漢字를 이용해 漢文으로 기록할 때 한국어 ‘토박이말’은 적기 不便하고 심지어는 大多數 토박이말은 아예 적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韓國 漢字音은 長短音 구별을 빼면 500여 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複雜多樣한 韓國語 토박이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토박이말을 漢字語로 飜譯하여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한자어는 일부 고집 센 유학자들의 열렬한 환호에 힘입어 좋은 우리말을 공격하거나 힘을 못 쓰게 덮어써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惡意的인 말입니다. 오히려 “漢字가 있음으로써 漢字語로나마 飜譯되어 기록되어 後世에 전해질 수 있었으니 不幸 중 多幸이었다.”고 적어야 事理에 맞습니다.
사람 이름, 事物의 이름, 地名 등 모든 낱말들이 그런 까닭으로 토박이말이 漢字語에 밀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지 우리 고유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피치못할 일이지, 惡意的으로 볼 일은 아닙니다. 訓民正音 創製 以後에 토박이말이 漢字語에 밀렸다면 그것은 토박이말을 지키지 못한 우리 韓國人의 잘못이지, 漢字語의 잘못은 아닙니다. 漢字語는 토박이말보다 競爭力이 있어서 살아남은 거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이라도 토박이말을 지켜나가도록 노력하는 일은 좋으나, 그렇다고 해서 漢字語를 억지로 죽여서 토박이말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漢字語는 韓國語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韓國語에 토박이말과 漢字語가 共存하는 일은 表現의 多樣性과 豊富性을 위하여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토박이말만 우리말이고 漢字語는 우리말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토박이말이 순 우리말로서 좀더 가치가 있다 할 수 있지만 漢字語가 韓國語 語彙가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미 2천년을 써온 漢字는 우리 韓國語 글자이며, 그 漢字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漢字語 또한 우리 韓國語 낱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토박이말만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그 상황에서 글 쓰는 이는 最適의 낱말을 찾아 써야 하는데, 그것이 토박이말일 수도 있지만 漢字語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토박이말도 지켜 나가야 하지만 漢字語 또한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 둘은 오늘날 오로지 한쪽만이 살아남고 다른 한쪽은 없어져야 하는 排他的인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相補的 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토박이말과 함께 漢字語를 우리 韓國語 語彙로 인정하고 잘 보존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문제는 토박이말과 漢字語가 아닌 다른 外國語들이 우리 韓國語 안에 浸透해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英語나 日本語와 같은 外國語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쓰지 않고, 토박이말 또는 漢字語로 飜譯하여 쓰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일이 문제가 되고 중요한 것이지, 이미 2천년간 韓國語의 70%를 차지해서 韓國語의 中心이 되어버린 漢字語를 批判하고 멀리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漢字語를 批判하는 일은 이제 와서 韓國語를 근본부터 허물어버리자는 매우 過激한 주장인 것입니다. 과연 그런 일이 필요합니까? 또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저 이재운이라는 인간은 지금 이 시점에서 漢字語를 비판하고, 오히려 “ 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아닌 회에 관련된 일본어 정도는 용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日本語는 擁護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저런 게 한글專用派들의 典型的인 思考方式인데, 참으로 時代錯誤的이고 判斷力이 부족한 생각입니다.
지금 이재운이 漢字語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煽動하면 한겨레신문 독자들은 한자어를 멀리하고 어디 가겠습니까? 토박이말로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토박이말이 漢字語에 밀린 게 여러 기본 자질과 능력이 부족해서이므로, 漢字語를 버리면 그 빈 자리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한글專用派들이 쓸데없이 時代逆行的으로 漢字語를 미워하다가 오히려 英語와 같은 진짜 外國語를 韓國語 안에 불러들여오는 결과를 招來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廣範圍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逆說的이게도 한글專用을 내세우고 韓國語의 純粹性을 지키겠다는 한겨레신문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글專用派가 漢字語를 멀리하려다가 오히려 英語를 불러들인다고 그 어리석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글專用派들은 漢字만 안 쓰고 漢字語만 몰아낼 수 있다면 英語와 日本語를 차라리 우리말 안에 들여오겠다는 비틀린 思考方式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제 “漢字 追放”이라는 盲目的인 생각에 빠져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것이 결국은 자신이 목적헸던 일을 더 심하게 그르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닌지지조차 판단하지 못합니다. 아니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 제가 이들 인간들에게 “미쳐도 곱게 미쳐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저 이재운이라는 인간이 아주 典型的인 그런 어리석은 인간으로 보입니다. )
여기까지다.
이 글에서는 날 '한글전용파'라고 단정해버렸다. 한겨레신문에 글 쓰는 사람은 다 한글전용파라고 낙인을 찍는가 보다. 난 <사고전서>에 <고금도서집성>까지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고, 한문이라면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오해받으니 웃음이 난다. 그이 글에 새카맣게 한자가 깔린 걸 보니 1919년에 나온 기미독립선언문을 읽는 듯해 입맛이 씁쓸하다.
그는 한자어는 우리말이고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 등은 외국어니까 안된다고 한다. 쇄국해서 좋은 게 별로 많지 않은데 강당파들은 이렇게 문 닫아걸고, 통제하는 걸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뭐 그런 거야 할 수 있는 주장이고, 한국어에 대한 주장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다. 의견으로 보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학자의 상식과 예의를 벗어난 부분은 마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주소, 전화번호 등이 없고, 그가 그 대학교수인지도 확인할 수 없어 일단 총장 앞으로 그의 비방문과 함께 팩시밀리 편지를 보냈다. 전화번호는 대학 홈페이지에서 알아냈다. 역시 대학과 그의 이름은 @@@다.
- 안녕하십니까,
@@대 총장님께 귀 대학 교수의 일로 항의합니다.
귀 대학 교수를 자칭하는 @@@이라는 사람이 인터넷 블로그에 본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성 글을 유포하고 있기에 먼저 글로 항의합니다.
@@@이란 사람이 귀 대학 교수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귀 대학 교수를 자칭하고 있으니 사실 확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소설가로 현재 한겨레신문에 <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말 관련하여 사전 4권을 집필한 우리말 전문가로서 귀 대학 교수를 자칭하는 @@@이란 사람의 품위없는 글로 훼손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이 다르면 정중하게 이견을 쓰면 되지 인신비방을 해서는 안되며, 더욱이 이런 자가 귀대학 교수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http://blog.chosun.com/@@@에 들어가 실제 글을 보시고 이런 사람이 저와 @@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재운
다행히 대학측에서 그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교수라는 주장은 맞는 모양이다. 그가 보내온 편지를 보자. 이상하게도 한자가 하나도 없다.
- 이재운 선생님,
@@대 @@@입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대학에 보낸 팩스를 총장님을 통해 받아 보았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언사를 지나치게 하여 선생님의 명예를 훼손한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머리 숙여 깊이 사죄 드립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래서 내일 목요일부터 제 조선일보 블로그를 폐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저는 인터넷 상에서 일절 어떠한 글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 반성의 자세를 보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그럼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과 편지인 셈이다. 그의 주장은 더러 맞고 더러 틀리는데, 학문적인 토론은 안되고 항의와 사과만 남았다. 나도 귀찮아 그의 이메일 계정으로 답신을 보냈다.
- 안녕하신지요?
보내주신 편지는 오늘에야 읽었습니다. 스팸메일함에 들어가 있어 늦게 보았습니다.
저는 소설가라서, 우리말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서
우리말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이 깊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선생이 오해하시는 한글전용론자도 아니지요.
한자 표기 없이 무조건 한글로 적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합니다.
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란 사전도 냈답니다.
한자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부러 만든 거지요.
그러고도 제가 만든 사전이 세 권 더 있습니다.
저만 알고 있기에 아까워 책을 엮은 거지요.
학문이란 서로 좋은 길 찾아가는 겁니다.
가다보면 길에서 만날 수도 있고, 갈릴 수도 있지요.
목표만 같으면 됩니다.
전 제 이름 석 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름 앞이나 뒤에 교수니 총장이니 박사니 하는 걸 안붙이고 순수하게 이름만으로 삽니다.
말하자면 명예로 제 가치를 평가받고 그 대가로 사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선생의 평은 너무 직설적이고, 저를 잘 알아보지도 않은 채 속단하고,
국어교수답지 않게 어휘와 문장이 거칩니다.
국문학을 하신다니 열정이 넘친다고 이해하겠습니다.
그 넘치는 열정으로 우리말 발전에 앞장서 주십시오.
오죽하면 소설가인 제가 사전을 네 권이나 만들었겠습니까.
그러고도 지금 사전 세 권을 더 편집 중입니다.
제 돈 들여 제가 하는 일이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연구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김 선생 같은 분들이, 전공하시는 분들이 안하시니까
필요한 제가 하는 겁니다. 저는 글을 써야만 하니까요.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김 선생 같은 국문학 교수들은 연구실에만 계시다보니
우리말의 급한 사정을 잘 모르시는 것같습니다.
강호는 넓고 무림은 깊다고 합니다.
훌륭한 연구를 많이 하셔서 우리말 발전에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말은 아직 다듬어야 할 분야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끼리 헐뜯고 해치고 발목 잡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도 워낙 바쁜 사람이라 이만 줄입니다.
김 선생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어 일단 학교에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 사과를 해주시니 제가 더 부끄럽습니다.
학교에 잘 마무리되었다고 알려주시고,
총장님께 걱정 끼쳐드려 제가 미안해 하더라고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시는 일 늘 잘 되시고,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재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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