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기자들 붙들고 시비거는 것같은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니, 아마추어가 아니고 프로들이니 좀 혼나도 감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과학 분야나 의학 분야 같은 전문 뉴스는 대개 그 방면의 학술용어로 뿌려진다. 이른바 보도자료에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러면 이 용어를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다듬어서 신문이든 방송이든 내보내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 그냥 생짜로 내보내는 일이 많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미터법을 쓰는데 기자들이 외국 기사를 옮길 때는 마일, 온스, 화씨 같은 미국식 도량형이 마구 나온다.
이처럼 보도자료를 금과옥조로 믿는 초보 기자들 중에서는 오히려 이해를 가로막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몇 년 전에 '아무개 탤런트, 에이즈 음성 판정!'이라고 대서특필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스포츠지였지. 하도 기가 막혀 이런 놈도 기자 하나 하고 혀를 찬 적이 있는데,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그 탤런트가 마치 에이즈에 걸린 듯한 느낌을 갖도록 묘하게 써있었다. 음성 판정이면 에이즈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인데, 그런데도 기자는 어떻게든 그 유명 탤런트 이름에 에이즈라는 무서운 단어를 마구 비벼놓아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도 아침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아무개 신종 플루 음성 판정'이라는 줄기사가 흘러가는데, 참 답답하다. 서울 시내를 지나가는 시민 50명쯤 잡아놓고 음성 판정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잘 모를 사람
꽤 나온다. 알기 쉽게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이러면 간단한데, 이해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건 의사나 방역 기관에서 저희들끼리 쓰는 전문 용어다. 그러니 양성이니 음성이니 하는 걸 국민들까지 알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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