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오전, 미양이가 출가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고양이 품성을 잘 몰라, 개처럼 바람이나 쐬라고 드라이브 나갔다가 잠시 차문을 연 사이 달아난 미양이가
25일 26일 밖에서 살았다.
처음에 달아날 때 미양이를 잡으려고 뛰었는데, 녀석이 출가하는 아이처럼 냅다 달아났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그냥 어디론가 가버렸다. 도를 닦든 구걸을 하든 멋대로 하라고 두었다.
잃어버린 곳이 괜찮은 아파트 단지라서 여러 곳에 고양이 돌보미(흔히 캣맘)들이 마련한 집이 있고, 사료와 물이 있는 걸 보고는 우리집 환경보다 좋으니 살만하겠다 싶어 그냥 둘까도 생각했다. 단지에 큰 개천이 흐르고, 정원이 근사해서 미양이가 살기에는 그리 나쁠 것같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기어이 페북 단체에 미양이 수배 전단을 올리고, 그러자마자 미양이를 보았다는 제보가 오고, 기어이 녀석이 돌아다니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모두 6차례에 걸쳐 아이를 찾으러 단지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집이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어떠냐고 호소하려는데, 뭐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가 27일 오전에 한 아가씨가, 미양이를 잡아 안고 있으니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딸 남자친구가 달려가 접수하려는데, 이놈이 낯선 얼굴 보고는 갑자기 달아나 컨테이너 아래로 숨어버렸다.
내가 다가가 불러도 미양거리기만 하지 도무지 오질 않았다. 집에서는 얼굴 비비고 꼬리치던 놈이 "이대로 살 테니 내버려 두세요" 하는 것만 같다.
포기하려는데, 딸이 추루라는 간식을 주면 나올 거라고 전화로 '지시하여'(하도 소리 지르니) 급히 간식을 마련했다.
남자들은 경계할 것같아 처음에 미양이를 발견한 아가씨에게 주어 간식을 흔들어 보라 하니, 미양이는 추루를 보자마자 당장 기어나와 홀짝홀짝 받아먹었다. 그러니 체포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머리로는 출가해도 불목하니 신세 벗지 못하고, 가출해도 거지된다.
집으로 데려와 목욕시키니 외출 잘했다는 듯이 늘어져 잔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재로 올라와 뛰어다니고, 별군이 만나면 따귀 때리고, 내가 앉아 숨을 쉬면 여전히 무릎에 올라와 저도 숨 쉰다.
미양이는, 본성이 고양이든 포유류든 중생이든 이제 약점이 잡혔다. 목줄 없어도, 칩 안박아도 이제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도망가봐야 언제든 추루 한 개면 도로 잡아올 수 있으니까.
* 주인 이름 전화번호 새긴 목걸이는 오늘도 배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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